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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태도의 차이

by 新出來氣 2014. 3. 12.


무신론자는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다.

그들은 새로운 것, 미지의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 
그들은 신이라는 존재를 밝혀야 할, 알아내야만 할, 반드시 깨뜨려야 할 벽과 같은 걸로 생각하는 듯하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그들에겐 깨달음의 명제가 아니고 풀어야 할 숙제로 접근한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동경한다.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면 그들은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개인 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존심은 대단히 강하다. 반면에 자기애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유신론자는 상대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덜하다.

유신론자들 중에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추정이다)은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것을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내 경험칙상 그랬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궁금한 것을 못참는다.
그렇다고 해서 유신론자가 게으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신론자보다 삶의 태도는 더 진지하다.
성실한 사람도 많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새벽기도는 게으른 사람에게는 지옥 그 자체다. 재밌는 것은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 남성은 상대적으로 대단히 소수다.)
이러한 경향을 가지는 이유는 이렇다.

그들에게 지적호기심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의 관계성이 있는가,
있다면 얼만큼인가, 이것이 중요하다.
아니 거의 이것만 중요하다고 해두자.
두려움, 논리성, 합리성 이런 것은 그 다음이다.
나와 상관이 있는지가 최우선의 관심거리다.
나와 관계가 있다고 결정되면 비로소 그들의 태도는 진지해진다.

이렇듯 유신론자는 자기애가 강하다.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회의주의와는 멀어지고

본인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무게가 기울어진다.

신은 날 선택하셨다느니, 날 사랑한다느니,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둥,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달콤한 명제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정적인 차이점이 그들을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만드는 듯하다.
무신론자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신이 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하고,
유신론자의 대답은 항상 같다. "그게 왜 필요하냐."

 

이 논의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거기에 추가로 서로 반대편을 향해 진행하며,
당연하게도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수 밖에 없게 된다.

그들은 아마도 사후세계에서조차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어느쪽이 맞건 틀리건 그들은 영원한 이별을 한 것이다.
 
무신론이 맞다면, 영혼조차 소멸되어버리니 만날 일이 없을 것이요.
유신론이 맞다면 사후의 격차가 극심하니  대면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무신론자는 현재를 살기 때문이고 나 역시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유신론자는 죽어서 천국 갈지언정, 다 나중 얘기다.

난 그런 것 싫다. 당장 내 밥상에 짜장면 한 그릇이 중요하다.
내일 무슨 메뉴가 나올 것인지는 내일 생각하련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충분한 건
무신론자인 나다.


내게 무신론적 사고가 굳어진 배경은

철학적인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 병리학적 관찰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누구든, 뇌졸중을 앓고 난 사람을 본 경험이 있다면,

인간의 영혼은 신체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아채리라.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식상한 구호는

그 식상함 뒤에 칼처럼 날카로운 진실을 숨기고 있다.

뇌에 이상이 생긴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일부 종교에 국한된 것일지 모르지만, 인간과 영혼을 동일시하는

이 악습은 인간의 지식을 퇴화시키는 우를 오랜 시간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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